Minimal Word History for Adults These Days
Minimal Word History for Adults These Days
Cover

Reading Logs
World War 2 Japan VS U.S.A
1941.12.07. 7:59 AM - 하와이 진주만 기지 일본군 폭격
- Background History
- 1853 - 미국 페리제독이 이끄는 함대 들어옴. 개항 후 서구 열강 따라잡기 위한 노력함
- 1893 - 청일 전쟁에서 압도적 승리 거둠, 러시아도 이김
- 1910 - 대한민국 강제 병합
-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식민지 지배권 강화함
- 1922 - 워싱턴회의 세계 3대 해군 강국 하나로 인정받음
- 1931 - 만주사변, 친일 괴뢰 국가 만주국 세움. 국제연맹의 비난에 국제연맹 탈퇴함.
- 1936 - 루거우차오 사건. 중국 본토 침략, 장제스 국민당 집권시기. 중일전쟁 시작.
- 동남아시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지배
- 1941 - 일본의 행보가 눈에 거슬렸던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하던 석유를 끊어버림
- 강경파 도조히데키가 칼을 뽑아 들며 미국과의 전쟁 결정함
- why Hawaii?
- 미국의 태평양 전력 대부분이 배치되어 있었음
- 여길 격파한다면 복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임
- 미국이 잠시 주춤한 사이 태평양과 동남아 주요 지역을 점령하고 미국과는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조약을 맺겠다고 생각함
- the big ambition of Japan
- 아시아를 호령하는 제국 건설. 대동아공영권
- 서부세력으로부터 아시아 식민지를 해방한다는 큰 틀 아래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, 동남아시아 일대의 자립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움
- Suprising Facts
- 미국은 이미 일본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엇음
- 진주만 공습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여 대비를 못함
- 미군이 레이더 경고를 착각함
- Result
- 일본의 기적적인 승리
1941.12.08 - 루스벨드 대통령의 일제 선전포고.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
1942.04 - 둘리틀 대령이 지휘하는 B-25 폭격기가 일본 본토 주요 도시에 폭탄을 터트림
- Result
- 전술적 성과는 미미하였지만 전략적으로 성과는 컸음
- 땅바닥까지 떨어졌던 미국 국민과 군인들의 자존심이 단숨에 회복됨
- 천황이 거주하는 도쿄 위로 폭탄이 떨어져 일본군의 심리적 타격이 컸음
1942.06.04 - 일본군 미드웨이 작전 실행 - 폭파하지 못했던 미군의 항공모함 전력을 없애야 한다고 판단
- Why Midway?
- 하와이와 일본의 중간에 위치하여 여길 공략하면 하와이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미군의 기동작전을 막을 수 있었음
- 하와이를 제외한 태평양의 유일한 근거지로서 미 해군에게 있어 절대 빼앗겨서는 안되는 전략적 요충지
- Period
- 1942.06.04 - 1942.06.07 (4 days)
- Result
- 미군의 암호해독으로 미군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서 미군이 압도적 승리함
1942.08.07- 과달카날섬 전투
- Why?
- 일본군의 호주 동북쪽 과달카날섬 항공기지 건설
- 과달카날은 남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
- 일본이 과달카날에 항공기지를 건설하면 호주와 미국의 연결을 차단할 수 있었음
- 위협을 느낀 미군 해병대가 공격함
- Result
- 미군의 정신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일본군이 너무 적게 병력을 투입함
- 일본군 3만명 중 2만 5000명이 전사
- 미군 승리
- 1942.12 일본군 철수
1944.06 - 미군이 사이판 상륙
- Why?
- 미군의 신형 폭격기 B-29가 사이판에서 발진하면 일본 본토를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
- Result
- 일본 해군 재기 불능 상태
- 군인들, 민간인, 강제 징용당한 한국인들에게 자살 강요 (자살절벽)
1945.02 - 미군이 도쿄 남쪽에 위치한 이오시마섬에 상륙
- Process
- 참호를 파고 기다렸던 일본군의 마지막 투혼
- 미군의 큰 피해 - 7000명의 전사자와 2만명 이상의 부상자
- Result
- 미군의 이오시마 점령
- 일본군 전 2만명 자멸
1945.03.10 - 도쿄 시내 소이탄 투하
- How?
- 미군의 B-29 폭격기가 344기가 소이탄 1665톤 도쿄에 투하
- 민간인 피해 최소화하는 고고도 정밀 폭격 VS 무차별 저고도 융단 폭격 중 폭격 작전 지휘한 커티스 르메이가 '융단폭격'을 택함
커티스 르메이
- Result
- 일본 사망자 10만명
- 100만명 이상의 이재민 발생
- 나무로 만들어진 일본 가옥 27만채가 불타며 도시가 잿더미로 변함
1945.04.01 - 미군이 18만명의 대군을 오키나와 섬에 상륙시킴
- Result
- 일본의 마지막 죽기살기 방어작전
-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의 적극 활동
- 미군의 막대한 피해 - 미군 1만명 전사자
- 오키나와섬 주민들이 총알받이로 세워짐. 명령에 불복종한 주민은 수류탄에 맞아 학살당함.
- 일본군 7만명 사망, 오키나와 주민 45만 명 중 약 15만 명이 사망
전진훈 - 항복을 죄악시함
"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강하다. 항상 고향과 가문의 명예를 생각해서 더더욱 분발하여 기대에 답할 것이다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어서 죄과의 오명을 남기는 짓을 하지 말라."
1945.07.26 - 포츠담 선언
- 내용
- 연합국 정상들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권함
- 일본은 천황제 유지에 집착하며 묵살
1945.08.06 -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
- Result
- 일본군 7만 8000명 시민 사망
- 일본 여전히 항복하지 않음
-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기 위해 최종 결정을 미루며 꾸물댐
1945.08.09 - 일본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
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한 소련의 남하
- Result
-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유럽뿐 아니라 동북아에서까지 활개칠까 우려하던 미국이 한반도의 절반인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하자고 제안함
- 한반도 분단됨
1945.08.15 - 히로히토 천왕의 종전 선언
- Result
- 한국 독립
1945.09.02 - 일본 외무대신이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태평양전쟁,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림
Vietnam War
1884~ 베트남 프랑스 식민통치 지배 받음
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프랑스를 제치고 베트남을 식민통치함
1941 - 베트남 공산주의 지도자 호찌민 '베트남 독립동맹' - 베트민 결성
1945.08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항복한 일본이 물러가면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선포됨
1946 - 프랑스가 베트남민주공화국 상대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일으킴
- Process
- 프랑스가 압도적인 차이로 하노이 장악
- 베트민의 산악지대 후퇴
- 1953 - 프랑스 전략적 거점이자 교통의 요충지 디엔비엔푸(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고원분지) 공격
- 베트남군이 포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직접 들고 고원지대에 올라가 대공포 터트림
- 베트남군은 청년, 여성으로 구성된 2만명의 주민들이었고, 200km 넘는 곳에서부터 달려와 개조한 자전거를 통해 물자를 운반하였음
-
힘내라! 산은 엄청나지만 우리 힘은 더 엄청나다. 계곡은 깊지만 우리의 분노는 더 깊다! 해뜨기 전에 대포를 산으로 끌자! - 보응우옌잡 장군
-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 격파
- Result
- 베트남군의 게릴라전과 정규전 혼합한 전술로 베트남군 승리
- 아시아 식민지가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 승리한 최초의 정규전
1954.07.20 - 제네바 협정 체결
- Result
- 프랑스군의 베트남 철수
- 북위 17도선 경계로 남과 북으로 분단됨
- 북쪽은 호찌민 정부 통치, 남쪽은 바오다이 정부가 통치
- 1956년에 남북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정부 수립하자고 약속함
- 피의숙청 시작 - 북쪽 가톨릭신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고, 남쪽 공산주의자들은 죽지 않기 위해 북으로 도망침 (이념 분화)
미국의 남베트남 차지
중국 공산화의 영향으로 세계에 연쇄적인 공산주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
1955 - 반공주의자 응오딘지엠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등극, 남베트남에 베트남공화국 수립
- Impact
- 응오딘지엠이 부정부패를 일삼음
- 친가톨릭 정책을 밀어붙이며 수많은 불교 신자를 처형함
- 80% 넘는 인구가 오랫동안 대승불교를 믿었기에 민심이 바닥에 떨어짐
-
틱꽝득 스님의 분신자살 사건 (소신공양)
1960 -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(베트콩)
- Who were they?
- 원래는 남베트남에서 응오딘지엠 정권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의 연합
- 그 중심에 공산주의 세력이 있었음
1963 - 군인들이 쿠데타 일으켜 응오딘지엠 숙청하고 군사정권이 다스림
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의 베트콩을 지원하기 위해 호찌민 루트[1]를 이용하여 무기와 병력을 전달해줌
1964 - 통킹만 사건. 미국군함이 통킹만 해상에서 북 베트남의 습격을 받음
- Why?
- 미국 개입의 명분은 통킹만 사건
- But, 진짜 명분은 도미노 이론
1965 - 미군의 개입. 베트남 전쟁 시작. 2차 인도차이나 전쟁
- Process
1968 - 구정(설날) 대공세
- Why?
- 설날이 최대 명절이기에 휴전해서 미 연합군이 휴식을 취했는데, 이 때 북베트남이 공세함
- Result
- 내부통신망을 갖추지 못해 손발 맞지 않음
- 정글에 은밀히 숨어있지 않고 노출됨
- 미국 대사관 잠시 점령함
- 미군에 대패
- But, 북베트남군은 정치전략면에서 승리하였음 (propaganda)
-
군사전략인 동시에 정치전략이었다. 우리도 미군을 섬멸할 수 없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. 하지만 미군의 싸울 의지를 없앨수 있다고 생각했다. 그게 구정 대공세의 이유다. - 약함 너머, 임종득
미군의 반전여론
- 구정대공세로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줌 (북베트남이 미국 대사관 잠시 점령)
- 네이팜 소녀
1968 - 리처드 닉슨 37대 대통령 당선
- 1969 - 닉슨독트린 발표 - 남베트남군이 스스로 방어하도록 국방력을 강화하고 미국은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
- 출구전략[4] - Exit Strategy
1973 - 파리협정, 베트남 전쟁 공식 종결
- 미국, 남베트남, 북베트남, 베트콩 대표가 모두 모여 전쟁을 중단하자는 휴전협정 맺음
- Result
- 남베트남 40만명 민간인, 50만명 정부군 사상자
- 북베트남군과 베트콩 100만명 전사
- 미군 전사자 5만명 이상
- 한국군 5000명 이상 전사자
1975 - 미군이 모두 철수한 남베트남을 북베트남이 공격
- Result
- 북베트남이 1달만에 통일
- 돈과 땅이 많거나, 남베트남과 미국과 조금만 연관이 있어도 노동 수용소에 끌려가 사상교육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을 시킴
- 남베트남 공산화에 공을 세운 베트콩들도 수감됨
- 남베트남에 있었던 배신자들이기 때문에
- 남베트남에서 자유의 물을 먹었었기 때문에
-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국가 탈출 - 보트피플
- 공산주의 도미노 현상으로 라오스와 캄보디아까지 공산주의 국가가 됨
- 캄보디아 킬링필드 사건
중동전쟁
- Background
- 세계 3대 종교가 추앙하는 땅 - 예루살렘, 가나안 (이스라엘)
- 아브라함은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인, 기독교, 이슬람교회의 공통조상
- 기원전 1020년 -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은 그들을 압박하던 고대 팔레스타인 민족 블레셋을 물리치기 위한 전쟁을 함
- Result
- 사울의 후계자인 다윗왕이 전쟁에서 승리
- 다윗왕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, 수도 예루살렘과 군주제가 국가의 중심이 되도록 함
- Result
- 기원전 965년 -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지위를 이어받음
- 기원전 957년 -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예루살렘성전[5] 건축
- 기원전 930년 - 북이스라엘왕국과 남유다왕국으로 갈라짐
- 기원전 730년 - 북이스라엘왕국이 아시리아에 함락
- 기원전 530년 - 남유다왕국이 바빌로니아에 점령 당함
- Result
- 바빌로니아는 예루살렘 곳곳과 성전을 파괴함
- 대부분의 거주민을 예루살렘에서 내쫓아버림
- 유다왕국의 백성들은 노예로 끌려갔는데, 이때부터 유다 사람들을 '유대인'이라고 불리게 됨
- Result
- 기원전 538년 -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함
- 고레스왕의 포로 귀향정책
- Result
-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1차 귀환
-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이끔
- 율법학자인 에스라의 주도로 유대인의 2차 귀환 이뤄짐
- 바빌론에서 돌아와 2번째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며 독립적 국가 유지
- Result
- 고레스왕의 포로 귀향정책
- 기원전 332년 - 세계정복 꿈꿨던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 점령 (마케도니아, 그리스 반도의 도시국가로 구성된 헬라지역 통일)
- 알렉산더 대왕의 계승국인 셀레우코스 왕국의 통치 받음
- 하스몬 왕조의 주도하의 유대인들의 혁명
- Why?
- 유대인의 헬라 문화 관습 흡수 거부, 유대교 행사 금지령
- Result
- 셀레우코스왕국이 유대민족의 자치권을 돌려줌
- Why?
- 기원전 63년 - 로마제국이 통치함
- 기원전 37년 - 유대의 왕을 헤롯으로 임명하고 넓은 내정권한을 줌
- 기원후 70년 -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군이 승리하며 예루살렘 함락, 제 2성전 무너짐
- 기원후 4세기 -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합법화, 로마제국 기독교 국가로 됨
- 632년 - 무함마드 사망
- 636년 - 아랍이 이스라엘 땅 정복함
- Result
- 아랍왕조가 지배하는 동안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에 버금가는 이슬람교의 성지가 됨
- Result
- 11세기 ~ 13세기 - 십자군 전쟁
- Why?
- 로마의 교황이 예수가 부활한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십자군 전쟁이 시작됨
- Process
- 1099년 -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점령
- 비기독교인 대부분이 학살당함
- 유대인은 방어에 실패하여 불에 타 죽거나 노예로 팔림
- Result
- 이슬람군의 승리
- 십자군 원정으로 유럽에서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열리며 성지순례가 일반화 됨
- 많은 유대인도 성지순례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음
- Why?
- 1291년 - 이슬람교도, 무슬림의 지배를 받음.
- 맘루크왕조, 십자군이 세운 교회 파괴,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세움
- 1517년 - 오스만 제국의 지배 시작됨
- 19세기 - 중세시대 막을 내림, 서양 열강에 의해 이스라엘땅이 새 대륙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이 됨
- 예루살렘의 유대인 인구 증가
- 20세기 초 - 히브리어 부활, 시온주의[7] 운동
유럽과 이슬람의 경계, 이베리아 반도를 둘러싼 패권 전쟁, 스페인
1] 기원전 500년, 페니키아인 후예인 카르타고 사람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옴
- 카르타고 : 해상무역의 달인. 스페인 전역에 세력을 넓히고 지중해의 심장부에서 무역으로 막대한 부 축적
2] 기원전 264 ~ 241년, 제 1차 포에니 전쟁
- 내용 : 로마가 카르타고를 견제해 시칠리아섬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일으킴
- 결과
- 로마
- 승리
- 카르타고
- 시칠리아섬 지배권 잃음
- 배상금 지불으로 경제적 위기
- 카르타고 육군 사령관 하밀카르 바르카 - 로마에 대한 치욕을 잊을 수 없어 군대 키움
- 로마
3] 기원전 221년, 하밀카르 바르카 아들 한니발이 카르타고 식민지 통치
4] 기원전 218년, 제 2차 포에니 전쟁
- 과정
- 한니발
- 뛰어난 전술로 2년간 로마의 10만 정예병 격파
- 로마
- 로마연합 시민들 독립 수호를 위해 단합
- 시민권[8] 덕분에 단합력이 컸음
- 영웅 스키피오의 활약
- 로마연합 시민들 독립 수호를 위해 단합
- 한니발
- 결과
- 로마
- 대승
- 이베리아 반도 차지
- 은광을 통해 엄청난 부를 얻게 됨
- 이베리아 반도의 다양한 민족이 로마 아래로 하나로 뭉치게 됨
- 스페인은 로마법 아래 모두가 라틴어를 사용하며 로마에 동화됨
- 카르타고 스페인 땅에서 영향력을 완전히 잃음
- 로마
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고트 왕국의 설립
1] 4세기 후반, 게르만족의 대이동
- 이유
- 중앙아시아의 훈족을 비롯한 유목민족의 압박
- 기후 변화로 혹독한 추위로 식량확보가 어려워짐
- 민족
- 동고트족
- 서고트족
- 반달족
- 부르군드족
- 유트족
- 프랑크족
- 앵글로족
- 색슨족
- 과정
- 동북쪽 유럽에서 서남쪽의 비옥한 로마제국으로 이동
- 결과
- 중세유럽 역사에 깊숙이 침투하여 각국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함
2] 5세기 후반, 로마제국의 멸망
- 도화선
- 훈족의 동고트족 점령
- 과정
- 동고트족 옆의 서고트족의 로마 이주
- 이민족의 침탈을 방어해주는 조건으로 로마제국의 허락을 받아 376년부터 로마에 이주해 살게 됨
- 서고트족에 머물던 지역 관리들이 서고트족을 괴롭힘
- 동물고기 비싸게 팜
- 노예로 착취
- 차별
- 부당한 대우
- 서고트족의 반란
- 동고트족 옆의 서고트족의 로마 이주
- 결과
- 서고트족의 반란 성공
- 게르만의 여러 다른 부족도 로마제국의 행정조직을 무너뜨림
- 로마 멸망
- 이탈리아 동고트왕국 설립
- 북프랑스의 프랑크왕국 설립
- 영국의 앵글로색슨왕국 설립
- 스페인의 서고트왕국 설립
800년만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다
1] 711년, 서고트왕국의 붕괴
- 원인
- 내부 갈등
-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세력의 침공
2] 750년, 압바스 가문의 반란
- 위치
- 아랍본토
- 결과
- 압바스 가문이 칼리프 지위를 빼앗음
- 칼리프 지위를 빼앗긴 우마이야왕조의 아브드 알라흐만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감
3] 756년, 알 안달루스 설립
- 누가
- 우마이야 왕조의 아브드 알라흐만
- 위치
- 스페인 코르도바
- 결과
- 알라흐만 1세가 됨
- 알람브라궁전 설립
- 코르도바가 유럽에서 제일 번영하는 도시로 발전
- 스페인의 문화와 경제 번창함
4] 1031년, 알 안달루스 소왕국으로 분할됨
- 원인
- 내분
- 결과
- 군주 1명이 통치하던 칼리프 왕국 사라짐
- 도시마다 군주들 난립
5] 14세기 초, 이슬람 세력의 지배권 박탈
- 원인
- 스페인 북부 지역의 가톨릭 세력이 커짐
- 가톨릭 세력 나라
- 레온왕국
- 카스티야왕국
- 아라곤왕국
- 나바라왕국
- 카탈루냐왕국
- 가톨릭 세력 나라
- 스페인 북부 지역의 가톨릭 세력이 커짐
- 과정
- 키스티야왕국 중심의 가톨릭 세력이 이슬람 세력과 전투를 벌임
- 결과
- 이슬람 세력
- 그라나다왕국을 제외한 모든 왕국의 지배권 박탈
- 레콩키스타
- 재정복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
- 8세기 ~ 15세기에 걸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자는 의미
- 가톨릭교도가 이슬람교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다는 국토회복 운동
- 800년에 걸쳐 지속된 전쟁
- 1492년, 이슬람 마지막 왕국의 수도인 그라나다의 지배권을 빼앗을 때까지 계속됨
- 이슬람 세력
5] 1469년, 카스티야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왕국의 페르난도 2세 혼인동맹
- 결과
-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왕국의 통합
6] 1479년, 카스티야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부부로서 가톨릭 공동 왕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음
7] 1492년,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이슬람 세력을 그라나다에서 몰아냄
8] 스페인의 재정 위기
- 원인
- 1492년, 이사벨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자들, 특히 유대인들을 쫓아냄
- 유대인들이 스페인의 의사와 재정관리자의 대부분이었기 때문
- 결과
- 나중에 국력쇠락의 결정적 원인이 됨됨
신대륙 발견으로 시작된 최초의 해가 지지 않는 제국
1] 스페인 황금시대 열림
- 원인
-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에게 신대륙 탐험 자금을 후원해줌
- 결과
- 식민지 개척
- 가톨릭전파
- 막대한 금과 자원이 스페인으로 쏟아져 들어옴
2] 1516년, 카를로스가 스페인의 왕위 계승
- 원인
- 가톨릭 왕들의 둘째 딸 후아나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아들인 펠리페 대공과 결혼함
- 합스부르크 왕조의 피가 섞인 아들 카를로스를 낳음
3] 카를로스의 거대한 영토 다스림
- 다양한 이름
- 스페인 - 카를로스 1세
- 신성로마제국 - 카를 5세
- 스페인 왕
- 신성로마제국 황제
- 이탈리아 왕
- 독일 왕
- 네덜란드 영주
- 오스트리아 대공
- 원인
- 든든한 배경인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
- 약 300년 동안 스페인, 영국, 프랑스 등 여러 왕실과의 전략적 혼인 진행
- 유럽의 여러 국가의 왕실이 사돈의 팔촌으로 엮임
- 1519년, 할아버지로부터 합스부르크 왕조의 모든 영토와 해외 땅까지 상속받음
- 든든한 배경인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
- 결과
-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서유럽 일대 다스림
-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다스림
- 아시아의 필리핀 다스림
- 세계 최초의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탄생
4] 16세기 중반, 카를로스 1세의 합스부르크 제국 분할 및 아들과 동생에게 각각 상속함
- 결과
- 스페인과 식민지 - 아들 펠리페 2세
- 신성로마제국 - 동생 페르디난트 1세
5] 1560년, 펠리페 2세의 재 파산선언
- 원인
- 예전의 유대인 추방으로 무너진 경제상황
- 국고 수입이 모두 저당 잡힘
- 식민지 전쟁으로 경제상황 계속 악화됨
6] 1575년, 재 파산선언
7] 1580년, 포르투갈을 스페인제국으로 합병
- 과정
- 알칸타라 전투에서 승리
- 결과
- 세계 최대의 무역함대를 소유
- 포르투갈의 여러 식민지까지 속국으로 만듦
- 4개 대륙에 걸친 지구상 최대의 제국으로 전성기 이룩
이류 국가로 순식간에 몰락하다
1] 1588년, 영국을 정벌하기 위해 무적함대 파병
- 원인
-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를 소유했다는 스페인의 자만
- 결과
- 스페인
- 철저히 훈련한 영국 함대에 처참히 패배
- 영국
-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새롭게 등극함
- 스페인
2] 국력쇠락
- 원인
- 30년전부터 무너져 온 경제기반
- 과정
- 국가 수익의 70퍼센트가 군사비로 낭비됨
- 국고는 파탄남
-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귀금속을 담보로 계속해서 빚을 짐
-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동전을 계속 주조 - 인플레이션
- 물가와 세금 오름
- 나라에 돈이 없으니 사람들이 영주권과 귀족 작위를 돈 받고 팔기 시작
- 치솟은 이자율로 기업 운영 불가능
- 국민의 노동 의욕 상실
- 왕실은 빚에 대한 거액의 이자를 지출하느라 민간에 자본을 쓰지 못함
- 결과
- 1596년, 스페인의 파산선언
- 17세기,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독립
3] 1700년,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 승리
- 원인
-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왕 카를로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남
- 과정
- 스페인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다툼
- 결과
- 프랑스 부르봉왕조 펠리페 5세 승리
- 유럽의 주도권을 프랑스가 가져감
- 1702년, 신성로마제국, 영국, 네덜란드가 동맹을 맺고 프랑스와 스페인에 선전포고
- 1701~1714년, 스페인 왕위계승전쟁
- 결과
- 펠리페 5세 마드리드 탈출
- 프랑스군 패배
- 1710년, 카를로스 대공이 마드리드에 입성
- 결과
4] 1713년, 위트레흐트조약으로 프랑스 왕위 계승 포기, 스페인 왕좌 차지
- 원인
- 오스트리아 왕위를 계승하는 카를로스로 인해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이 하나가 되어 힘을 누릴까 두려움
- 영국과 네덜란드가 '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면 스페인 국왕 자리를 인정해주겠다'는 제안을 함
전쟁과 독재로 뒷걸음질치다
1] 1808년, 나폴레옹 스페인 점령 및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 호세 1세 국왕됨
2] 1809년, 프랑스의 스페인 영토 장악
3] 1814년, 영국의 도움으로 프랑스 철수 시키고 나폴레옹이 유폐시킨 페르난도 7세를 왕위에 올림
4]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독립
5] 스페인 군중들의 카디스 헌법 제정
- 내용
- 앞으로 왕은 의회의 결정을 다라야 한다는 최초의 민주 헌법
6] 내전 발생
- 원인
- 마드리드로 돌아온 페르난도 7세가 카디스 헌법을 완전히 무시
- 과정
-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대립 증폭
- 결과
- 내전과 기나긴 이념 싸움
7] 1868년, 이사벨 2세의 도주
- 결과
- 급진 자유주의자 정권이 스페인에서 시작됨
8] 1873년, 이탈리아 사보이아가의 아마데오의 퇴위 선언
- 결과
- 의회의 투표
- 스페인 공화정 수립
- 1년도 안되는 기간에 4명의 대통령이 통치하는 등의 심각한 무질서 상태
9] 1874년, 스페인 제 1공화국 붕괴
10] 이사벨 2세의 아들 알폰소 12세의 부르봉 왕조 재건, 스페인 입헌군주국이 됨
11] 1898년, 쿠바 문제로 인해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미서전쟁 발생
- 결과
- 스페인 패배
- 쿠바, 푸에르토리코, 필리핀, 괌을 미국에 넘겨줌
- 신흥 국가 미국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
- 스페인 국민에게 큰 상처가 됨
12] 1914년,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 중립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함
13] 1923년, 물가상승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, 긴장감을 이용해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쿠데타
14] 1931년, 군주제 대신 제 2공화정 선포
15] 1936년, 스페인 내전 발생
16] 1939년, 공화국 정부군을 이긴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40년 통치
- 과정
- 수도 마드리드 중심으로 독재가 이뤄짐
- 결과
- 다른 지역을 차별하게 됨
- 스페인에 극심한 지역감정을 가지고 옴
17] 1957년, 새롭게 수립된 내각의 신경제정책으로 관광산업 발전
18] 1975년, 프랑코가 지목한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입헌군주제 민주주의 국가 수립
- 원인
-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죽음
미지의 섬 브리튼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기까지
영국
1] 기원전 8세기, 켈트족이 브리튼섬으로 이주
2] 기원전 55년, 로마 카이사르 브리튼섬 침공
3] 43년,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브리튼섬 주요 섬 장악
- 영향
- 도로
- 수도시설
- 로마의 공용어 라틴어 유입
4] 122년, 하드리아누스 브리튼섬 방어를 위해 하드리아누스 방벽 건설
5] 410년, 브리튼섬의 로마군이 돌아감, 로마의 지배 끝
앵글로/색슨족이 땅을 차지하다
1] 앵글로 색슨족의 브리튼섬 장악
- 원인
- 브리튼 사람들은 로마가 철수한 후 땅 방어를 위해 앵글로 색슨족 전사들을 부름
- 결과
- 브리타니아로 불리던 브리튼섬이 앵글로인의 땅이라는 뜻에서 잉글랜드로 바뀜
2] 브리튼섬의 7왕국 중 웨식스의 앨프레드 대왕이 바이킹을 물리침
- 결과
- 브리튼섬 통일
- 국가의 기반 다짐
- 아들 에드워드가 웨일스와 스코틀랜드까지 세력 확장
3] 1015년, 덴마크 왕자 크누트가 잉글랜드, 노르웨이, 덴마크를 모두 정복하여 북해 제국 건설
- 그러나 그의 사후에 다시 앵글로 색슨족의 통치기
4] 1066년,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한 윌리엄, 노르만왕조 시대 열림
- 원인
- 에드워드 왕이 죽고 영국의 왕위가 공백상태가 됨
- 내용
- 잉글랜드 왕 헤럴드
- 노르망디공국의 윌리엄
5] 1086년, 윌리엄 1세 솔즈베리 서약을 통해 귀족과 성직자에게 공식적 충성 맹세
- 결과
- 중세 유럽의 중앙집권적 봉건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함
6] 헨리 2세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, 플랜테저넷왕조 시작
- 내용
- 잉글랜드, 아일랜드, 웨일스, 스코틀랜드, 프랑스 일부까지 통치
- 넓은 영토 기반으로 왕권 강화
- 오늘날 영국 헌법의 기초인 보통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사법 개혁 추진
- 법률에 일관성 부여
- 지방 귀족이 임의로 통치하는 것을 억제함
7] 사자왕 리처드 1세 즉위
- 내용
- 십자군 전쟁에 몰입
-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5세에게 포로로 잡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넘겨짐
- 하인리히 6세는 리처드 1세의 석방을 위한 거액의 몸값 요구
- 결과
- 국민들의 모금
- 런던시민의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귀환함
8] 1295년,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왕이 전쟁군자금 마련을 위해 의회 소집
- 내용
- 의회는 귀족과 성직자만 참여 가능했지만, 처음으로 일반 시민들이 정치 무대에 등장함
- 모범의회
- 교회 지도자와 귀족으로 이뤄진 상원
- 지방에서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하원
-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발전 단계로 평가받음
잔 다르크가 활약한 백년전쟁과 두 가문의 치열했던 장미전쟁
1] 백년전쟁
- 원인
- 1337년, 에드워드 3세 영토 분쟁과 왕위 계승권을 문제 삼아 프랑스 북부 침공
- 내용
- 1340년 슬로이스 해전에서 영국의 해군이 승리
- 1346년 영국군 프랑스 상륙하여 크레시 전투 펼쳐 큰 승리함, 최초의 대규모 전투
- 프랑스의 중요 항구 도시 칼레 점령
- 공포의 흑사병 전역에 퍼져 휴전함
- 휴전 이후 전투에서 프랑스 대패
- 프랑스 국왕이 포로로 잡힘
- 1360년, 브레티니 조약 체결
- 잔 다르크 등장
- 13세부터 프랑스를 구원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함
- 프랑스 왕 샤를 7세를 접견한 후 전투에 참가해 프랑스군의 사기를 드높임
- 1453년, 프랑스가 화약을 장착한 대포를 제조해 잔다르크 민중군대와 결합해 영국군을 상대로 대성공을 거둠
- 결과
- 영국, 백년전쟁에서 패배
- 영국의 중앙집권 군주국가 건설, 내부 세력 싸움
2] 1455년, 장미전쟁
- 원인
- 왕위를 두고 랭커스터가와 요크가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
- 랭커스터 붉은 장미
- 요크가 흰 장미
- 왕위를 두고 랭커스터가와 요크가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
- 과정
- 32년간의 전투
- 결과
-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왕위 차지
- 요크가는 내분으로 오래가지 못함
- 진짜 승자는 튜더왕조의 헨리 7세
- 랭커스터와 요크가 통합하고 왕위 차지함
- 튜더가의 상징
- 랭커스터 붉은 장미 + 요크가 하얀 장미 - 튜더 장미
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탄생
1] 영국의 절대왕정 시대
2] 1600년, 동인도 회사 설립 및 신항로 개척
3]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 제임스 1세 영국 왕으로 즉위
- 결과
-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통합
- 대브리튼 왕국의 기반 마련
4] 1607년, 잉글랜드가 북아메리카 제임스 왕의 이름을 딴 최초의 식민지 제임스타운 건설
- 결과
- 잉글랜드 식민지 개척 사업의 시발점
- 13개 주를 포함한 영국의 식민지로 이어짐
- 줄무늬 13개로 이뤄진 국기 = 미국 국기의 모티브

5] 1628년, 찰스 1세와 의회 사이의 충돌
- 원인
- 의회는 국왕의 권력 제한하려 함
- 왕권신수설[9]을 신봉한 찰스 1세가 용납하지 않음
- 결과
- 의회가 권리장전 문서를 제출하여 서명을 받아냄
6] 1630년, 국왕과 의회 간의 갈등의 심화
- 원인
- 찰스 1세가 그 이후에도 의회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며 약속을 어김
7] 1642년, 청교도혁명
- 원인
- 종교와 재정 문제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킴
- 국왕과 의회파 간의 전쟁
- 결과
- 올리버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가 국왕 찰스 1세를 참수형에 처함
- 공화국 건설
- 왕권의 절대적 지배를 제한하고,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중요한 단계가 됨
8] 1653년, 올리버 크롬웰 호국경[10]이 되어 나라 통치 시작
- 결과
-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정복
- 영국의 내정 장악
- 외교, 군사, 입법 장악
- 1658년, 말라리아로 인해 런던에서 생을 마감함
9] 1660년, 망명생활을 하던 찰스 2세가 런던으로 돌아와 왕정 복구됨
10] 명예 혁명
- 원인
- 찰스 2세 뒤를 이은 제임스 2세가 가톨릭교도임을 공개적으로 선언
- 신교도로 대부분 이뤄진 영국 사회에서 갈등이 일어남
-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징수하는 문제로 의회와 충돌함
- 의회는 오랜 기간 동안 이뤄온 종교개혁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
- 무혈혁명
-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 채 전제 왕권을 몰락시킴
- 입헌군주제 확립
11] 1688년, 제임스 2세의 폭정에 대한 불만으로 의회가 네덜란드 총독 윌리엄과 메리 부부를 영국으로 초대
12] 1689년, 제임스 2세 폐위, 윌리엄과 메리 부부 왕위에 올림
- 결과
- 권리장전이 승인됨
- 왕권을 제약하고 의회가 왕위 계승까지 결정하는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제 확립됨
13] 1707년, 연합법 제정
- 결과
-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이 합병
-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탄생
- 한 명의 군주로 통치되는 왕국 연합이 이뤄짐
- 전제군주제를 벗어나 입헌군주제로 나아감
대영제국의 해가 저물다
1] 1714년, 하노버 왕조 시작, 조지 1세 왕위 계승
2] 1721년, 로버트 월폴이 영국 최초의 총리로 임명됨
3] 1775년, 미국에서 독립혁명 시작됨
4] 18세기 말, 영국을 필두로 미국, 프랑스, 독일 등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남
- 내용
- 기계 기술자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 발명
- 교통의 발전을 가져옴
- 영국의 전대미문의 경제 발전 이룩
5] 1801년,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이 연합법으로 합병되어 그레이튼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탄생
6] 1837년, 빅토리아 여왕 즉위
- 결과
- 활발한 산업혁명
- 막강한 해군력
- 많은 식민지
-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 이룩
7] 1921년, 아일랜드 남부 독립, 그레이튼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바뀜
8] 1952년,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
- 1차,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 겪음
- 아시아, 아프리카 식민지 해방운동, 식민지 독립 허용
왜 러시아는 10년마다 전쟁을 벌일까?
러시아와 동슬라브
-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땅
- 혹독한 추위와 강력한 군대
- 세계 최초 사회주의국가
1] 러시아 민족
- 동슬라브인
- 하자르인과 노르만인[11]의 영향을 받음
2] 862년, 노브고로드공국 건설
- 시발점
- 여러 작은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슬라브족은 내부 혼라과 외부 세력과의 충돌로 혼란함
- 안정을 찾기 위해 잘 정비된 군사력을 갖춘 루스인에게 도움을 청함
- 과정
- 노르만인(루스인)이 슬라브족의 요청에 응함
- 결과
- 류리크가 노브고로드공국을 세움
3] 2대 공작 올레그, 키이우루시[12] 점령, 수도 이전, 키이우 공국 세움
- 비잔티움을 겨냥한 여러 차례의 성공적 공격 주도
4] 블라디미르 1세 반란으로 정권 잡음
- 그리스정교회를 국교로 채택
- 러시아정교회가 그리스정교회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교회로 발전하게 됨
- 비잔티움 황제의 누이와 결혼함
유일하게 러시아를 정복한 몽골군의 진격
1] 1015년, 몽골군이 키이우공국을 침략
- 원인
- 블라디미르 1세 12명의 아들에게 주요 도시 통치하게 함
- 블라디미르 1세 사후 형제들끼리의 권력다툼
-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어 혼란기 맞이함
- 결과
- 몽골군이 점령
- 폴란드와 헝가리 공격
- 1240년 - 1480년, 몽골(킵차크칸국)의 지배받음, 타타르의 멍에
2] 모스크바 공국의 성장
- 원인
- 주변에 힘센 도시들이 둘러싸고 있어 보호벽이 되어줌
- 몽골의 눈에 띄지 않고 독립성을 잘 지킴
- 이반 1세, 러시아의 대공이라는 칭호 얻음
- 1380년, 쿨리코보 전투에서 승리
- 몽골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타타르족과 맞서 싸움
- 결과
- 민족의 재결합이라는 희망이 생김
- 러시아 민족의 진정한 중심지로 성장
3] 15세기 중반, 이반 3세 주변 공국 병합 및 영토 확장
- 이반 3세, 스스로 차르라고 칭함
- 1480년, 킵차크칸국에서의 독립
이반 뇌제부터 표토르대제까지
1] 이반 3세의 아들 바실리 3세
- 통치방식
- 키이우 시대에 러시아인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민주정치가 점차 사라짐
- 타타르의 중앙집권적 지배 방식에 영향을 받아 독재적 경향을 보임
- 업적
- 280만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모두 합병, 러시아 통일
2] 1547년, 바실리 3세의 아들 이반 4세가 차르로 즉위
- 다른 이름
- 이반 뇌제 (Ivan the terrible)
- 공포정치
- 원인
- 어릴 때부터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을 목격하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함
- 유아시절에는 작은 동물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죽이기도 함
- 13세에는 실세였던 귀족을 죽이기도 함
- 결과
- 순간적 광기로 아들을 쇠지팡이로 내려쳐 죽임
- 원인
- 공포정치
- 이반 뇌제 (Ivan the terrible)
- 업적
- 강력한 전제정치
- 국내 문제 과감히 정비, 영토 크게 확장
3] 1584년, 이반 뇌제의 죽음 후 혼란의 시대가 찾아옴
4] 1610년, 폴란드 침공
- 과정
- 러시아 주민들을 무차별 적으로 죽임
- 결과
- 러시아 주민들의 대규모 국민군 결성
- 폴란드를 물리치고 모스크바 되찾음
5] 1614년, 미하일 로마노프 차르 등극
- 과정
- 귀족부터 농민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국민 회의 열고 새로운 통치자 선출
- 결과
- 로마노프 왕조 시작
- 안정을 찾아가며 현대국가를 향한 발돋움
6] 1689년, 표토르대제 즉위
- 업적
- 군사 개혁
- 서유럽 문화의 도입
- 신분을 감추고 사절단과 함께 서유럽 탐방
- 선진기술 도입
- 반란세력 모두 처형
- 자신의 황태자까지 포함
- 스웨덴 정복으로 발트해 지배권 확립
- 상트페테르부르크 새로운 수도 건설
- 다른 이름
- 저주받은 도시
- 인민의 뼈와 피 위에 세워졌다고 함
- 저주받은 도시
- 다른 이름
유럽 최고의 국가로 우뚝 선 러시아제국
1] 1721년, 표토르의 러시아제국 선포
- 업적
- 인재양성 전문학교 설립
- 처음으로 신문 발행
- 여성들이 남성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지 못했던 관습을 변화시킴
- 여제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 마련
2] 1762년, 예카테리나 2세 황제
- 과정
- 남편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황제가 됨
- 업적
- 제국 확장
- 국민 교육 강화를 위해 무상교육 실시
- 러시아 최초의 사범대학 설립하여 교사 양성
- 1773년, 역사상 가장 큰 농민 반란 발생
- 원인
- 귀족들의 충성;심을 얻으려고 농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정책 시행
- 과정
- 예멜리얀 푸가초프 등장
- 60년 후,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푸시킨이 이 사건을 소재로 소설도 씀
- 예멜리얀 푸가초프 등장
- 원인
3] 1801년, 알렉산드르 1세 차르 즉위
4] 프랑스의 나폴레옹 러시아 침략
- 과정
- 러시아군은 큰 전투를 일부러 피하고 도시에 불을 지르고 후퇴하는 전술 사용
- 겨울이 와 추위와 물자 부족으로 나폴레옹군 위기 맞이함
- 결과
- 러시아의 승리
- 러시아가 유럽을 이끄는 최고의 국가로 인정받음
피의 일요일과 타오르는 혁명의 불꽃
1] 니콜라이 1세 즉위
- 잘못한 점
- 군대 파견하며 유럽 가국에 간섭을 일삼음 - 유럽의 헌병이라는 별명 얻음
- 반정부 사상을 가진 문학에 대한 검열제도 강화
-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 맞이함
- 결과
- 크림전쟁
-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 중심으로 펼쳐짐
- 유럽 열광과 니콜라이 1세의 싸움
- 결과
- 러시아의 패배, 큰 타격을 입음
- 크림전쟁
2] 1894년, 알렉산드르 2세 즉위
- 큰 변화
- 1861년, 농노 해방
- 사회민주주의 유입
- 지식인들이 인민에 의한 변혁을 꿈꾸며 활발히 활동하게 됨
- 민주화, 산업혁명 시작됨
-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중요시하는 마르크스 신봉자들의 활동
- 사회주의 정당 성장
- 영국식 입헌군주제 주장하는 자유주의 운동도 일어남
- 잘못한 점
- 구시대적 왕정을 그대로 이어감
- 결과
- 반정부 세력이 점점 조직적으로 확대되어 러시아제국의 종말이 가까워짐
3] 1904년, 러일 전쟁
- 원인
- 러시아, 일본 모두 조선, 중국, 만주 차지하려고 함
- 결과
- 러시아 패배
- 세계적 생산과잉 현상
- 엄청난 양의 물건이 팔리지 않고 쌓여감
- 자본가들의 노동자 해고
- 세금 부담이 늘어남
- 생필품 가격 상승
- 세계적 생산과잉 현상
- 일본 승리
- 러시아 패배
4] 1905년, 피의 일요일
- 내용
- 가혹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함
- 20만명의 시위대 동궁으로 향함
- 평화적 시위
- 결과
- 2만명의 병력이 총격
- 끔찍한 유혈사태 발생
- 44만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하게 됨
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
1] 1905년, 소비에트 결성
- 내용
- 노동자와 농민, 병사의 대표
- 노동자계급을 혁명으로 이끔
- 대결구도
- 사회주의를 통한 점진적 변화 - 온건파 멘셰비키
- 공산주의로 바로 나아가자 - 강경파 볼셰비키
2] 1914년, 1차 세계대전 발발
- 결과
- 전쟁 부담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엉망이 됨
- 분노 폭발
3] 1917년 2월,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 퇴위, 로마노프 왕조 역사 막을 내림
4] 알렉산드르 케켄스키 임시정부 세움
5] 1917년, 블라디미르 레닌이 10월 혁명으로 정권을 잡음
- 원인
- 임시정부도 사회적 문제 해결을 잘 못해냄
- 대세
- 강경파 볼셰비키
-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러시아에 접목함
- 결과
- 1917년 - 1921년, 전시공산주의 비상정책 실시
- 러시아의 사기업 대부분 사라짐
- 강제노동제도 생겨남
- 민간 상거래 금지
- 정부가 식량과 생필품 분배함
- 러시아의 모든 토지를 국유화함
6] 적백 내전
- 원인
- 급격한 공산화 정책으로 경제적 혼란이 가중됨
- 불만 가진 새력이 백군이 됨
- 백군 - 상류층과 중류층 vs 적군 - 노동자와 농민
- 결과
- 1922년, 레닌의 볼셰비키 세력 승리
- 소비에트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수립
7] 레닌의 신경제정책
- 내용
- 제한적인 자본주의
- 국가경제의 큰 틀을 차지 하는 것은 정부 소유
- 일부 상업만 사유화 인정
- 결과
- 신경제정책의 성공
- 국민의 불만과 시위가 점차 줄어듦
- 볼셰비키 독재 굳건해짐
8] 1927년, 이오시프 스탈린 시대
- 원인
- 레닌의 뇌줄증 건강 악화
- 스탈린에게 많은 업무 위임함
- 1924년, 레닌의 죽음
- 내용
- 강력한 독재 체제
- 사회주의 시작
- 업적
- 경제개발 5개년 계획
- 산업화에 대한 근대화 주장
- 중공업 육성
- 이유
- 공산정권의 권력을 다지기 위해 마르크스 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 계급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
-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다른 나라의 공산주의를 지원하기 위해
- 이유
- 결과
- 1차 5개년 계획 성공
- 1933년, 2차 5개년 계획
- 1940년, 소련의 생산량과 독일의 생산량이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감
- 유럽국가들이 75년간 이룬 성과를 소련은 2년만에 이룩함
- 국민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잃음
- 노동인력 강제징발
- 집단화 반대하는 자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감
- 차등 임금제
- 공장 경영자, 기술자, 관료, 작가, 예술인들이 새로운 지배층이 됨
- 일반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봉급을 받음
- 마르크스 - 능력에 따라 생산, 필요에 따라 분배
- 스탈린 - 능력에 따라 생산, 노동에 맞춰 분배
- 공장 경영자, 기술자, 관료, 작가, 예술인들이 새로운 지배층이 됨
- 피의 숙청 시작
- 경제개발 5개년 계획
히틀러를 물리치고 시작된 냉전 시대
1] 1939년, 독일의 히틀러와 독소불가침조약 체결
2] 1941년, 독일 히틀러가 불가침조약 파기하고 소련을 기습공격함
- 결과
- 1945년, 소련군이 독일의 국회의사당에 승리의 깃발을 꽂음
-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vs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- 냉전 시작
3] 1953년, 흐루쇼프 차세대 지도자
- 1957년,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
- 1960년, 공산주의 진영이 자본주의 진영과 경제 격차를 좁혀나가 앞지르기까지 함
- 1980년까지 유토피아적 공산국가를 만들겠다고 함
- 결과
-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짐
- 결과
4] 쿠데타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실권 장악
- 업적
- 적대 관계 두 진영의 긴장을 풀고 화해를 선택하는 데탕트 노선을 택함
- 결과
- 소련의 사회경제 체제는 마비되고 맘
5] 1985년, 미하일 고르바초프 개혁과 개방을 외치며 민주화 추진
6] 1991년, 소련 붕괴
- 결과
- 15개 공화국 독립함
- 리투아니아, 라트비아, 벨라루스, 우크라이나, 조지아 ...
- 고르바초프 사임
- 15개 공화국 독립함
땅따먹기 싸움을 계속하는 진짜 이유
1] 2014년,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있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
2] 2022년 2월,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
- 원인
- 우크라이나가 나토[13]에 가입함
- 러시아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함. 푸틴과 많은 러시아인은 막강했던 옛 소련 시절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하며, 언젠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, 조지아를 잇는 과거 제국을 다시 세우겠다는 꿈을 품었음
-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완충지,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.
- 우크라이나가 원래 옛 소련에 소속되어 있었다가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국가임
- 두 나라의 공통적 뿌리는 키이우 공국에서 출발함
-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
-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식량 창고로 유명할 만큼 기름진 흑토를 가지고 있음
- 1년 내내 얼지 않아 배가 출입할 수 있는 항구인 부동항을 가지고 있음
- 연중 무휴로 해상무역이 가능함
-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부동항은 폴란드 위쪽 발트해의 칼리닌그라드
- 원래 독일 땅이었다가,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편입됨
- 독일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 차지
- 독일 전신인 프로에신의 중심지
- 왕이 즉위할 때마다 대관식을 치름
-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고향
- 1990년, 러시아가 동서 독일의 통일을 지지해주는 대가로 독일은 칼리닌그라드를 포기함
- 2014년, 크림반도 병합하면서 차지한 세바스토폴도 부동항
-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부동항
-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해에서 러시아가 제해권을 장악하려는 계획이 실행될 가능성이 높음. 부동항을 손쉽게 얻게 되며, 서방세력 간섭 없이 강력한 해양 패권을 가질 수 있게 됨.
- 우크라이나가 나토[13]에 가입함
My Thoughts
굉장한 역사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간 느낌이다
아주 간단하게 요약해서 중요한 역사의 부분들을 다뤘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웠다
여기 정리하지 않은 부분들도 있는데
- 아이티의 좀비 단어 유래
- 캄보디아의 킬링필드
- 오키나와 섬의 비밀
등 재미있는 역사 지식이 많다
보면서 제일 충격 받았던 부분은 캄보디아 킬링필드였는데
솔직히 묘사가 굉장히 충격적이라서 읽으면서도 너무 끔찍했던 것 같다
원래 처음에 Reading Log 형식으로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
이렇게 타이핑을 치다 보니까 책 내용이 전체적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한번 읽고 정리하려다가
다시 생각해보니 양이 너무 많아서
일단은 내가 정리한 것 까지만 정리해봤다
노트에다가도 적어봤는데
이렇게 정리하는 방법도 괜찮은 듯 싶다


어쨌든 전체적으로 아주 유용한 역사 지식들이 많아서 현대에도 이어지는 정치와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
역사 중 중요한 파트들만 읽어보고 흐름을 파악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매우 강력 추천한다
Book References
Book Report
2024-10-30 - Minimal Word History for Adults These Days Report
2024-10-30 - Book Daily Report
2024-10-5th - Book Weekly Report
베트남의 운명을 이끈 길. 예전에 프랑스와 싸울 때 만든 옆나라 캄보디아와 라오스 정글 사이로 난 약 만 킬로미터의 보급로 ↩︎
3000도의 고열을 내며 반경 30미터 이내를 불태우는 폭탄. 베트남 숲은 원가 습해서 잘 타지 않았음. ↩︎
식물의 잎을 말려 죽이는 독한 약 ↩︎
군사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끝내는 전략. 특정상황에서 벗어날 때 두루 쓰이는 말. ↩︎
유대교의 원천,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부활한 성지,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가 승천해 신을 만난 장소 ↩︎
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유대인. 이후 의미 확장이 되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, 혹은 이주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음. ↩︎
팔레스타인에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운동.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과 동의어로 사용된 시온에서 딴 이름 ↩︎
인종/출신/종교/배경이 달라도 로마에서는 시민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권리 ↩︎
국왕의 권리는 신에게서 받은 것이다 ↩︎
왕을 섭정하는 귀족을 뜻함 ↩︎
바이킹 해적의 후예, 루스인이라고도 불림 ↩︎
러시아, 벨라루스,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기원원 ↩︎
북대서양조약기구. 1949년에 설립. 냉전 초기에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이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군사동맹. ↩︎